김해 회현리 패총(金海會峴里貝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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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하류의 김해평야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높이 7m
동서너비 130m, 남북너비 30m 정도의 낮은 구릉에 형성된 조개더미로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1907년 이마니시류우(今西龍)가 발견하고, 1920년 우매하라스에나오(梅原末治)·하마다코우사크(浜田耕策)가 발굴하였으며, 1934년 카야모토모리토(榧本杜人)가 동단 정상부를 발굴조사하였다. 1920년 조사에서 화천(貨泉) 탄화미(炭化米) 등이 발견되었고, 1934년 조사에서 조개더미와 구별되는 아래의 문화층으로 고인돌, 독무덤, 돌널무덤이 확인되어 돌널무덤에서 석촉, 붉은간토기, 독무덤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관옥(管玉)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이 약간 경사면으로 흘러내린 모습으로 남아 있다. 화천은 A.D 9년에 왕망(王莽)이 주조한 화폐로 불과 10년 정도 통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평양과 김해에서 발견되고, 일본열도에서는 큐우슈우(九州)에서 오오사카(大阪)에 까지 출토되고 있다. |
<삼국지> 위서 왜인전은 대방군(황해도)에서 구야국(김해)을 거쳐 큐우슈우의 왜국에 도달하는
교통로를 전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출토되는 화천은 이 해로를 통한 교류가 얼마나 빈번하였던가를 보여준다.
구야국은 이러한 교류 및 교역의 중심지로서 중개무역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